시작은 단순했다. 게임 하다 보면 웃긴 닉네임을 보는 순간이 있다. 그걸 사진으로 찍으면 카드가 되고, 다른 사람이 투표해서 등급을 매기고, 그 카드를 모아 자랑하는 앱을 만들기로 했다.
일단 다 만들었다
빠지는 것 없이 채워 넣었다. 사진에서 글자를 읽어 카드로 만들고, 1:1로 두 카드를 보여주고 어느 쪽이 더 웃긴지 골라 등급을 매기고, 카드로 겨루는 결투장을 만들고, 체육관 8단계에 관장을 앉히고, 교환소와 마을까지 붙였다. 소리도 배경음악부터 필살기 효과음 24가지까지 다 넣었다.
- 도감 — 찍은 카드를 모아 보는 곳
- 1:1 심사 — 두 카드 중 더 웃긴 쪽에 투표, 쌓이면 등급이 정해짐
- 결투장 — 내 카드로 실시간 대결
- 체육관 8단계 — 관장을 하나씩 깨고 올라감
- 교환소 — 카드를 서로 바꿈
- 봉인 부적 — 계정 없이도 코드 하나로 폰을 바꿔 카드를 되찾음
- 소리 — 배경음악·효과음·필살기 24가지, 전부 코드로 만든 소리
"들어가면 띡 하고 있는 느낌"
기능을 다 채운 뒤 사장님이 실제로 써보고 한 말이다.
게임의 흐름이 없어. 어디든 화면을 들어가면 띡 하고 있는 느낌. 너무 재미 없는데 게임이 조잡해.
화면을 다시 열어 숫자를 세어봤다. 카드 171장 중 등급이 확정된 건 25장(15%)뿐이었고, 143장(85%)은 아직 심사 중이었다. 그중 138장(82%)은 표가 6~11개, 딱 2표만 더 있으면 등급이 정해지는 상태로 줄 서 있었다. 그런데 그걸 보려면 도감에서 카드를 하나씩 눌러야 했다.
| 살펴본 것 | 숫자 |
|---|---|
| 도감에 있는 카드 | 171장 |
| 등급이 확정된 카드 | 25장 (15%) |
| 아직 심사 중인 카드 | 143장 (85%) |
| "표 2개만 더" 상태인 카드 | 138장 (82%) |
재미의 중심을 네 번 고쳐 잡았다
사장님이 이렇게 정리했다.
게임적으로는 가위바위보. 게임도 아니고 닉네임 모으기도 아니고 생성기도 아닌 것 같다.
사장님이 한 말
내가 아는 웃긴 닉네임을 모아 자랑하고, 다른 사람은 실제 게임 닉네임을 여기 와서 고를 수 있게. 모으기만 하면 할 게 없으니 게임도 있어야 해
그래서 제가 한 일
- 1안 — "닉네임 월드컵"만 남기고 나머지는 숨기는 안을 냄
- 사장님 반박: "월드컵만 한다고 무슨 재미가 생겨?" — 맞는 말이었다. 월드컵엔 결과를 모르는 두근거림도, 내 것이 걸리는 느낌도 없었다
- 2안 — "닉네임 대회"(주제 공개 → 제출 → 월드컵 심사 → 1등 맞히기)로 고침
- 3안 — 사장님이 "닉네임 점수로 하는 카드게임"을 제안. 공정한지 모의실험으로 확인해보니 문제가 나왔다
- 4안 — 사장님이 "카드 가격이 오르내리는 증시"를 제안. 법 조항과 실제 사례를 찾아보니 위험 신호가 여럿 나왔다
- 결국 9/16, 처음 나왔던 "닉네임 월드컵"으로 돌아가되, 보상으로 카드팩을 뜯는 재미를 더하는 쪽으로 확정
사장님이 직접 하신 일매번 "진짜 재밌냐"고 되물어 다음 안으로 넘어가게 함
카드게임안은 숫자로 걸러졌다
"닉네임 점수로 카드게임을 만들자"는 안이 나왔을 때, 느낌으로 판단하지 않고 파이썬으로 가짜 대전을 수백~수천 판 돌려봤다. 결과는 나빴다.
| 돌려본 방식 | 결과 |
|---|---|
| 점수만 비교(카드 3장 다 씀) |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 오래 한 사람을 이길 확률 0% |
| 카드 5장 들고 3판 승부 | 그래도 신규 승률은 여전히 0%대 |
| 덱 3장 총점 150 제한 + 판마다 1점 | 무적 덱은 없어졌지만, 신규는 여전히 약한 카드 3장으로는 18% |
| 같은 방식에 약한 카드 8장을 모으게 함 | 신규 승률 36%까지 올라옴 — 그나마 가장 공정했던 조합 |
증시안은 법부터 걸렸다
다음 안은 "발견한 사람이 닉네임 카드에 값을 매겨 팔고, 사람들이 사고팔면서 가격이 오르내리는" 증시였다. "먼저 알아본 닉네임이 떡상한다"는 그림 자체는 재밌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걸리는 게 많았다.
- 게임산업법에 게임머니를 돈으로 바꿔주는 걸 업으로 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다
- 비슷하게 작아서 시세가 쉽게 흔들리는 시장은 실제로 소수가 값을 몰아 올렸다가 손 떼는 사례가 있다
- 가격이 곧 힘이 되는 구조는 모의실험에서 이미 나온 문제(먼저 시작한 사람이 유리함)를 그대로 되풀이한다
법 조항이 걸립니다. 이대로는 못 만듭니다.
재밌어 보이는 아이디어일수록 법부터 먼저 봐야 합니다
"돈으로 사고파는 대신 가짜 코인으로만" 식으로 안전하게 다듬은 안도 나왔지만, 그러면 재미가 같이 빠졌다. 이 안은 그대로 보류됐다.
결국 정한 것 — 닉네임 월드컵
9/16, 사장님이 방향을 확정했다. 앱의 중심은 "닉값 : 닉네임 월드컵"이다. 두 카드 중 더 웃긴 쪽을 고르는 것 자체가 게임이고, 이기면 카드팩을 얻어 뜯어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 안에도 지켜야 할 선을 하나 그어뒀다. 카드를 포켓몬 카드처럼 화려하게 꾸미더라도, 카드에서 제일 큰 글자는 닉네임 자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도트 캐릭터가 크고 닉네임이 작게 찍혔던 첫 화면의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소리는 전부 코드로 만들었다
배경음악·효과음·필살기 소리 24가지, 전부 음원 파일(mp3) 없이 코드가 그 자리에서 계산해서 낸다. 남의 곡을 참고 자료로 받은 적은 있지만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
반주를 그대로 가져오는 건 거절합니다.
반주도 그 곡의 일부라 저작권 문제가 됩니다
대신 빠르기와 조성처럼 저작권이 없는 정보만 참고하고, 가락은 새로 지었다. 음원 파일이 하나도 없으니 앱 용량도 그대로고, 낼 때마다 음높이를 살짝 흔들어 반복해도 덜 질리게 만들었다.
가입을 스스로 막아버린 날
사람이 아니라 기계로 계정을 대량으로 만들어 투표와 뽑기를 부풀리는 걸 막으려고, 가입할 때 계산 문제를 풀게 하는 장치를 넣었다. 문제는, 이걸 켠 순간부터 예전 버전 앱을 쓰던 사람은 새 계정을 아예 못 만들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 남은 것
마을·결투·체육관·교환소는 없애지 않고 화면 뒤로 숨길 예정이다. 카드 등급을 화려하게 꾸미는 연출과, 사용자가 직접 카드를 꾸미고 일부는 사서 쓰는 안까지는 정해졌는데, 세부 설계는 아직 답을 기다리는 중이다.
방향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고 이번엔 확실하다고 장담하진 않는다. 대신 이번엔 만들기 전에 숫자로 먼저 걸러보고, 법부터 먼저 찾아보고 시작했다. 다음 편은 아마 설계가 실제로 끝나 화면이 나오는 이야기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