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혼자 삼키는 말이 있다. 친구한테는 못 하고, 가족한테는 더 못 하는 말. 그걸 이름 없이 적는 앱이다. 적으면 누군가 읽고, 가끔 답이 달린다.
어떤 앱인가
- 글은 유리병에 담겨 바다에 뜬다 — 목록이 아니라 바다 화면이다. 떠 있는 병을 건지면 그 안에 남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읽는다"보다 "건진다"에 가깝게 만들었다.
- 이름도 전화번호도 받지 않는다 — 가입이랄 게 없다. 별명만 정하면 시작된다.
- 반응은 세 가지 — 용서 · 공감 · 조언. 좋아요가 아니라 이 셋이다. 어떤 말이 필요한지가 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 댓글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 다만 비공개로 올린 글에는 댓글이 안 달린다.
- 라무가 답을 준다 — 아무도 안 읽어주면 다시 안 온다. 그래서 답하는 존재를 하나 세웠다(아래에 적었다).
- 오늘의 질문 — 빈 칸을 마주하면 아무 말도 안 나온다. 아직 한 줄도 안 쓴 사람에게만 질문 카드가 뜬다.
- 연재 일기 — 매일 밤 한 편씩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다. 다음 편이 궁금해서 돌아오게 만드는 장치다.
- 잠금 — 비밀번호를 걸면 폰을 남이 열어도 이 앱은 안 열린다. 익명 앱에서 제일 무서운 건 옆 사람이다.
- 5개 언어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스페인어 · 포르투갈어.
- 답이 달리면 알려준다 — 알림을 켜두면 내 글에 반응이 왔을 때 뜬다.
시작은 한 마디였다
사장님이 한 말
익명으로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앱 만들어줘
그래서 제가 한 일
- 화면 구성을 잡고 글쓰기 · 읽기 · 반응 세 가지만 남김 (기능을 늘리지 않는 쪽으로 결정)
- 가입에 이름·전화번호를 받지 않도록 설계 — 익명이 깨지면 앱이 존재할 이유가 없어서
- 앱 전체 코드 작성 · 스토어 등록 파일 준비 · 심사 대응
- 출시 후 반응을 보고 첫 화면을 여러 번 갈아엎음 (아래에 적었다)
사장님이 직접 하신 일스토어 제출 · 결제
"익명으로 아무 말이나"라는 말 안에 이미 어려운 것이 두 개 들어 있었다. 익명이면 아무도 안 쓴다는 것과, 아무 말이나 하면 험한 말이 온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만들었나 — 판단 세 가지
① 종교 앱으로 만들지 않았다. 이름이 고해성사라 오해받기 쉽다. 하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적는 것은 고백만이 아니다. 일기·고민·연애·직장·그냥 오늘 있었던 일. 그래서 주제를 좁히지 않기로 정했다. 앱 안 문구도 종교 쪽으로 기울지 않게 계속 다듬는다.
② 답하는 존재를 사람이 아니라 캐릭터로 뒀다. 글을 올렸는데 아무 반응이 없으면 다시 안 온다. 그렇다고 "AI가 답합니다"라고 하면 그것대로 정 떨어진다. 그래서 라무라는 아기 양 신부를 세웠다. 판단하지 않고 훈계도 안 한다. 다정하지만 조금 서툴다. 옆에는 양치기 강아지 코니가 있다.

③ 신고를 '싸움'이 아니라 '돌봄'으로 불렀다. 보통 앱은 신고 버튼을 두고 끝낸다. 그러면 신고하는 사람이 고발자가 된다. 그래서 문구를 바꿨다. 험한 글을 눌러 치우면 "코니가 꼬리를 살랑 흔들어요"라고 뜬다. 같은 기능인데 누르는 마음이 달라진다.
제일 큰 사고 — 안전장치가 2%만 돌고 있었다
이 앱에는 글에서 위험한 신호를 발견하면 상담 전화번호를 띄우는 기능이 있다. 밤에 혼자 쓰는 앱이라 이건 있어도 그만인 기능이 아니라 있어야만 하는 기능이다.
그런데 확인해 보니 그 검사가 글 100개 중 2개에서만 돌고 있었다. 나머지 98개는 그냥 지나갔다. 만들 때는 붙였는데, 글이 지나가는 길이 여러 갈래로 늘어나면서 그중 한 갈래에만 붙어 있었던 것이다.
전부 검사하도록 바로 고쳤습니다.
이건 늦게 찾았으면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글을 검사하도록 고쳤고, AI가 답을 못 하겠다고 물러서는 경우에도 상담 번호는 뜨게 만들었다. 답을 거절당한 사람이 제일 위험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고 — 사용자 수를 잘못 세고 있었다
"사용자 31명"이라고 보고 있었다. 실제로는 6명이었다. 다른 시점에는 21명인 줄 알았는데 2명이었다.
우리가 만들어 넣은 시험용 계정과 미리 채워둔 글이 진짜 사람으로 같이 세어지고 있었다. 숫자가 부풀어 있으니 "조금씩 늘고 있네"라고 착각했다. 실제로는 거의 아무도 없었다.
시험용 계정에 표시를 달아 빼겠습니다.
숫자가 틀리면 판단이 전부 틀립니다. 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세 번째 — 설치한 13명 중 11명이 한 줄도 안 썼다
출시하고 숫자를 봤더니 이랬다. 앱은 켰는데 글을 한 줄도 안 쓰고 나갔다. 기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원인을 찾아보겠습니다.
만들 땐 다 될 것 같았습니다. 늘 그렇습니다
들어가서 보니 첫 화면이 AI가 미리 써둔 예시 글로 덮여 있었다. 빈 앱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넣은 것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진짜 사람이 쓴 글이 아래로 밀려 안 보였다. 처음 온 사람 눈에는 "여기 다 만들어진 글만 있네"로 보인 것이다.
그래서 순서를 뒤집었다. 아직 안 본 진짜 사람 글이 맨 위, AI가 쓴 글은 사람 글을 다 본 뒤에야 나온다. 그리고 아직 한 줄도 안 쓴 사람에게만 오늘의 질문 카드를 띄웠다. 빈 칸을 마주하면 아무 말도 안 나오지만, 질문이 하나 있으면 답은 나온다.
네 번째 — 다섯 개 언어로 만들었는데, 새고 있었다
한국어·영어·일본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로 만들었다. 사전은 다 채워져 있었는데도 화면에는 한국어가 그대로 떴다.
원인은 번역 자체가 아니었다. 번역된 조각들을 코드에서 이어붙여 새 문장을 만든 곳이 문제였다. 이어붙인 문장은 사전에 없으니 찾지 못한다. 하필 외국인이 제일 먼저 보는 글쓰기 칸이 그랬다.
다섯 번째 — 버튼이 헛눌렸다
용서·공감·조언 버튼이 35픽셀이었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자꾸 빗나갔다. 컴퓨터 화면에서 마우스로 누를 때는 멀쩡했다.
손가락이 닿는 곳은 44픽셀 이상이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 맞춰 전부 키웠다. 이건 취향 문제가 아니라 크기 문제다.
지금 안 되는 것
- 설치가 거의 다 한국이다. 다섯 개 언어로 만들어놨는데 해외에서 아무도 안 온다. 막힌 것은 앱이 아니라 '발견'이다.
- 홍보 계정이 정지됐다. 오탐이었고 이의제기도 막혔다. 그래서 알릴 통로가 하나 줄었다.
- 사람이 적으면 답이 안 달리고, 답이 안 달리면 또 안 온다. 이 고리를 아직 못 끊었다.
앱을 만드는 것보다 사람이 오게 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걸 여기서 배웠다. 만드는 데 걸린 시간보다 알리는 데 쓴 시간이 이미 더 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