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집이 검색 실험으로 쓰는 글입니다 · 왜 쓰는지 보기 →

펫로스 증후군, 반려동물을 보내고 일상이 무너졌을 때

밥그릇을 아직 못 치웠을 겁니다. 현관문을 열면서 마중 나오는 소리를 여전히 기다리고, 산책 시간이 되면 몸이 먼저 일어섭니다. 청소기를 돌리다가 소파 밑에서 털 뭉치가 나오면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되고요.

그런데 밖에서는 아무 일 없는 얼굴로 지냅니다. 말해봐야 돌아오는 대답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래도 개잖아", "또 키우면 되지". 그 말을 듣고 나면 슬픔에 창피함까지 얹힙니다. 이 글을 찾아봤다면 아마 그 지점에 서 있을 겁니다.

이상한 게 아닙니다

먼저 짚고 갈게요. 펫로스 증후군은 병명이 아닙니다. 진단서에 적히는 이름이 아니라,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뒤 겪는 상태를 부르는 말이에요. 잠이 안 오고, 입맛이 없고,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고, 아직도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것. 전부 사별을 겪은 사람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동물인데 이 정도까지 힘든 건 내가 유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질문 자체가 이 슬픔의 특징이에요. 다른 가족을 잃었을 때는 아무도 그걸 묻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클까

슬픔의 크기는 같이 산 시간이 아니라 하루에 몇 번 마주쳤는지로 정해집니다. 그 아이는 하루에 수십 번 들어왔어요.

자책이 유난히 오래 남는 이유

반려동물을 보낸 사람들이 공통으로 붙잡고 있는 문장이 있어요.

말 못 하는 상대를 돌봤기 때문에 생기는 자책입니다. 그 아이는 어디가 아픈지 말해주지 않았고, 우리는 끝까지 추측으로 판단해야 했어요. 그래서 결과를 알고 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놓친 신호가 전부 선명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아는 걸로 그때의 나를 재판하면 누구도 무죄가 못 됩니다. 특히 마지막을 직접 결정해야 했던 경우라면 더 그래요. 그 결정은 그 아이를 덜 아프게 하려고 내린 것이지, 포기한 게 아닙니다.

슬픔은 순서대로 오지 않습니다

보통 이런 모양으로 흘러갑니다. 순서대로도, 한 번씩만도 아니에요.

좋아지던 주에 두 칸 뒤로 가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실패가 아니라 원래 그런 모양입니다. 기일, 생일, 처음 데려온 날, 계절이 바뀔 때쯤 특히 그래요.

오늘부터 해볼 수 있는 것

  1. 물건을 서둘러 치우지 마세요. 주변에서 "빨리 정리해야 잊는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다 버리면 후회가 하나 더 생깁니다. 밥그릇 하나, 담요 한 장은 남겨둬도 됩니다. 치우는 건 마음이 준비됐을 때 한 칸씩.
  2. 하루의 뼈대를 다시 세우세요. 제일 힘든 시간은 원래 산책하던 시간대입니다. 그 시간에 다른 걸 미리 넣어두세요. 걷기라도 좋습니다. 같은 길을 걷기 힘들면 방향만 바꿔도 달라져요.
  3. 써서 내보내세요. 하고 싶었던 말, 미안한 것, 고마운 것을 그냥 적어보세요. 편지 형태여도 좋고 메모 몇 줄이어도 됩니다. 속에서만 도는 말은 줄지 않지만, 밖으로 나온 말은 줄어듭니다.
  4. 애도할 자리를 직접 만드세요. 사진 한 장 놓기, 발도장 액자, 기일에 좋아하던 간식 두기. 남들이 보기엔 사소해 보여도 "이만큼 소중했다"를 스스로 인정하는 절차라 효과가 큽니다.
  5. 같은 경험을 한 사람과 이야기하세요. 이 슬픔은 겪어본 사람과 안 겪어본 사람의 반응 차이가 유난히 큽니다. 한 사람이라도 "나도 그랬어"라고 해주면 창피함이 먼저 빠집니다.
  6. 남은 반려동물도 살펴주세요. 같이 지내던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도 밥을 덜 먹거나 자꾸 찾으러 다닐 수 있어요. 평소 일과를 최대한 그대로 지켜주는 게 도움이 됩니다.
  7. 새 아이는 나중에. 빈자리를 못 견뎌 급하게 데려오면 그 아이를 자꾸 앞의 아이와 비교하게 됩니다. 둘 다에게 힘든 일이에요.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자체는 배신이 아니니, 시기만 미뤄두세요.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방법들

아이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멀리 여행 갔다", "잠들었다" 같은 표현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아이가 여행이나 잠을 무서워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나이에 맞게 몸이 많이 아파서 다시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정도로 사실대로 말해주는 편이 낫습니다. 아이 앞에서 울어도 괜찮아요. 슬플 때 슬퍼해도 된다는 걸 그 자리에서 배웁니다.

이럴 땐 혼자 버티지 마세요

슬픈 것과 생활이 멈춰버린 것은 다릅니다. 다음 중 하나라도 몇 주째 이어진다면 정신건강의학과나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락해보세요.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역마다 있고 비용 부담 없이 상담받을 수 있어요. 마지막 항목이 스친 적 있다면 숫자를 세지 말고 아래 번호로 연락하세요. 반려동물 사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신호입니다.

밤마다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면 밤에 생각이 많아 잠 못 들 때를, 자책이 계속 돈다면 자책이 멈추지 않을 때를 같이 보세요.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면 자꾸 눈물이 날 때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요. 이 슬픔이 큰 건 잘못 키워서가 아니라 잘 키워서입니다. 그 아이 입장에서 보면 평생이 당신 옆이었어요.


말해도 이해받기 어려운 이야기라면, 이름 없이 적어두는 방법도 있어요.

고해성사 — 익명으로 적고 위로받는 앱

힘든 마음이 계속된다면 혼자 견디지 마세요.
자살예방 상담 109 · 정신건강 상담 1577-0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