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로스 증후군, 반려동물을 보내고 일상이 무너졌을 때
밥그릇을 아직 못 치웠을 겁니다. 현관문을 열면서 마중 나오는 소리를 여전히 기다리고, 산책 시간이 되면 몸이 먼저 일어섭니다. 청소기를 돌리다가 소파 밑에서 털 뭉치가 나오면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되고요.
그런데 밖에서는 아무 일 없는 얼굴로 지냅니다. 말해봐야 돌아오는 대답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래도 개잖아", "또 키우면 되지". 그 말을 듣고 나면 슬픔에 창피함까지 얹힙니다. 이 글을 찾아봤다면 아마 그 지점에 서 있을 겁니다.
이상한 게 아닙니다
먼저 짚고 갈게요. 펫로스 증후군은 병명이 아닙니다. 진단서에 적히는 이름이 아니라,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뒤 겪는 상태를 부르는 말이에요. 잠이 안 오고, 입맛이 없고,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고, 아직도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것. 전부 사별을 겪은 사람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동물인데 이 정도까지 힘든 건 내가 유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질문 자체가 이 슬픔의 특징이에요. 다른 가족을 잃었을 때는 아무도 그걸 묻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클까
슬픔의 크기는 같이 산 시간이 아니라 하루에 몇 번 마주쳤는지로 정해집니다. 그 아이는 하루에 수십 번 들어왔어요.
- 일과가 통째로 그 아이 중심이었습니다. 눈 뜨자마자 밥, 아침 산책, 퇴근길 발걸음, 자기 전 마지막 확인. 떠나고 나면 슬픔보다 먼저 오는 게 할 일이 없어진 느낌인 경우가 많아요. 시간이 비는 게 아니라 하루의 뼈대가 빠진 겁니다.
- 조건이 없는 관계였습니다. 내가 무능해도, 돈을 못 벌어도, 씻지 않은 채 누워 있어도 똑같이 반가워한 유일한 상대였어요. 그런 관계는 사람 사이에서도 흔하지 않습니다.
- 돌보는 쪽이었습니다. 밥 주고, 약 먹이고, 병원 데려가고. 보호자 역할이 사라지면 슬픔에 더해 "쓸모가 없어진" 기분까지 옵니다.
- 마음껏 슬퍼할 자리가 없습니다. 이게 제일 큽니다. 부고를 알릴 곳도, 장례에 와줄 사람도, 며칠 쉬겠다고 말할 곳도 없어요. 슬픔은 그대로인데 드러낼 데가 없으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안에서 오래 돕니다.
자책이 유난히 오래 남는 이유
반려동물을 보낸 사람들이 공통으로 붙잡고 있는 문장이 있어요.
- 조금만 더 일찍 병원에 갔으면 달랐을까
- 그날 내가 결정한 게 맞았을까
- 마지막 순간에 내가 옆에 없었다
- 바쁘다고 산책을 미룬 날이 너무 많았다
- 아픈 걸 늦게 알아챘다
말 못 하는 상대를 돌봤기 때문에 생기는 자책입니다. 그 아이는 어디가 아픈지 말해주지 않았고, 우리는 끝까지 추측으로 판단해야 했어요. 그래서 결과를 알고 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놓친 신호가 전부 선명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아는 걸로 그때의 나를 재판하면 누구도 무죄가 못 됩니다. 특히 마지막을 직접 결정해야 했던 경우라면 더 그래요. 그 결정은 그 아이를 덜 아프게 하려고 내린 것이지, 포기한 게 아닙니다.
슬픔은 순서대로 오지 않습니다
보통 이런 모양으로 흘러갑니다. 순서대로도, 한 번씩만도 아니에요.
- 실감이 안 나는 시기. 장례를 치르는 동안은 오히려 담담합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요.
- 뒤늦게 무너지는 시기. 며칠에서 몇 주 뒤에 옵니다. 사료 자동주문 알림, 병원에서 온 문자, 사진첩 자동 추억 같은 사소한 데서 갑자기 터집니다.
- 되감는 시기. 마지막 몇 달을 계속 돌려봅니다. 제일 소모가 큰 구간이에요.
- 옅어지는 시기. 잊는 게 아닙니다. 떠올려도 하루가 무너지지 않는 상태가 되는 거예요.
좋아지던 주에 두 칸 뒤로 가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실패가 아니라 원래 그런 모양입니다. 기일, 생일, 처음 데려온 날, 계절이 바뀔 때쯤 특히 그래요.
오늘부터 해볼 수 있는 것
- 물건을 서둘러 치우지 마세요. 주변에서 "빨리 정리해야 잊는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다 버리면 후회가 하나 더 생깁니다. 밥그릇 하나, 담요 한 장은 남겨둬도 됩니다. 치우는 건 마음이 준비됐을 때 한 칸씩.
- 하루의 뼈대를 다시 세우세요. 제일 힘든 시간은 원래 산책하던 시간대입니다. 그 시간에 다른 걸 미리 넣어두세요. 걷기라도 좋습니다. 같은 길을 걷기 힘들면 방향만 바꿔도 달라져요.
- 써서 내보내세요. 하고 싶었던 말, 미안한 것, 고마운 것을 그냥 적어보세요. 편지 형태여도 좋고 메모 몇 줄이어도 됩니다. 속에서만 도는 말은 줄지 않지만, 밖으로 나온 말은 줄어듭니다.
- 애도할 자리를 직접 만드세요. 사진 한 장 놓기, 발도장 액자, 기일에 좋아하던 간식 두기. 남들이 보기엔 사소해 보여도 "이만큼 소중했다"를 스스로 인정하는 절차라 효과가 큽니다.
- 같은 경험을 한 사람과 이야기하세요. 이 슬픔은 겪어본 사람과 안 겪어본 사람의 반응 차이가 유난히 큽니다. 한 사람이라도 "나도 그랬어"라고 해주면 창피함이 먼저 빠집니다.
- 남은 반려동물도 살펴주세요. 같이 지내던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도 밥을 덜 먹거나 자꾸 찾으러 다닐 수 있어요. 평소 일과를 최대한 그대로 지켜주는 게 도움이 됩니다.
- 새 아이는 나중에. 빈자리를 못 견뎌 급하게 데려오면 그 아이를 자꾸 앞의 아이와 비교하게 됩니다. 둘 다에게 힘든 일이에요.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자체는 배신이 아니니, 시기만 미뤄두세요.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방법들
- 괜찮은 척하기. 주변은 편해지지만 안에는 그대로 쌓입니다. 나중에 엉뚱한 데서 터져요.
- 사진을 아예 안 보거나, 하루 종일 보기. 양쪽 다 오래 끕니다. 볼 때를 정해두는 편이 낫습니다.
- 술로 넘기기. 그날 밤은 지나가지만 다음 날 기분이 더 내려갑니다.
- 마지막 몇 시간만 반복해서 떠올리기. 같이 산 시간 전체가 그 몇 시간으로 덮여버립니다. 건강했던 시절의 장면을 일부러 하나씩 꺼내보세요.
- 위로랍시고 하는 말을 그대로 받기. "또 키우면 되지" 같은 말은 나쁜 뜻이 아니라 할 말을 몰라서 나오는 겁니다. 그 말에 내 슬픔의 크기를 맞추지 마세요.
아이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멀리 여행 갔다", "잠들었다" 같은 표현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아이가 여행이나 잠을 무서워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나이에 맞게 몸이 많이 아파서 다시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정도로 사실대로 말해주는 편이 낫습니다. 아이 앞에서 울어도 괜찮아요. 슬플 때 슬퍼해도 된다는 걸 그 자리에서 배웁니다.
이럴 땐 혼자 버티지 마세요
슬픈 것과 생활이 멈춰버린 것은 다릅니다. 다음 중 하나라도 몇 주째 이어진다면 정신건강의학과나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락해보세요.
- 잠을 거의 못 자거나, 하루 종일 누워만 있다
- 끼니를 계속 거르고 체중이 눈에 띄게 변했다
- 출근이나 집안일처럼 꼭 해야 하는 일을 못 하게 됐다
- 술 양이 확실히 늘었다
- 자책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차지한다
- 나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스친 적이 있다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역마다 있고 비용 부담 없이 상담받을 수 있어요. 마지막 항목이 스친 적 있다면 숫자를 세지 말고 아래 번호로 연락하세요. 반려동물 사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신호입니다.
밤마다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면 밤에 생각이 많아 잠 못 들 때를, 자책이 계속 돈다면 자책이 멈추지 않을 때를 같이 보세요.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면 자꾸 눈물이 날 때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요. 이 슬픔이 큰 건 잘못 키워서가 아니라 잘 키워서입니다. 그 아이 입장에서 보면 평생이 당신 옆이었어요.
말해도 이해받기 어려운 이야기라면, 이름 없이 적어두는 방법도 있어요.